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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약속, 치매 없는 세상을 열다 [인터뷰]

정지환 에디터

이비인후과 전문의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대표까지, 상실을 동력 삼아 의료 혁신에 앞장서는 인물. 신정은 보이노시스 대표의 이야기.

위대한 혁신은 종종 개인의 상실에서 시작한다. 전신(電信)을 발명한 새뮤얼 모스는 아내의 임종 소식을 늦게 접한 것이 후회로 남아 통신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세균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는 전염병으로 자녀를 잃은 계기로 백신 연구에 몰두했다. 진료실을 넘어 창업가의 길로 들어선 보이노시스 신정은 대표의 출발도 마찬가지다.

신정은 대표는 20여 년간 환자의 목소리를 들어온 이비인후과 전문의였다. 그가 안정적인 의사의 길을 내려놓은 건 치매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이다. 의료 기술의 한계로 아버지의 증세를 미리 알아채지 못한 후회가 신정은 대표를 병원 밖으로 이끌었다. 자신과 같은 후회를 다른 이들은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의사의 감이 아닌 데이터로 치매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겠다는 다짐으로 보이노시스를 창업했다. 신정은 대표의 간절함을 원동력으로, 보이노시스는 ‘2023 국제 음향음성 신호처리 학술대회(ICASSP)’ 알츠하이머질환 판별 챌린지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아버지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딸의 다짐이, 의료 혁신 기술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이제 그는 ‘치료(Cure)’를 넘어 ‘관리(Care)’를 이야기한다. 일상의 목소리만으로 거창한 검사 없이 뇌 건강을 살피고 생체 나이를 되돌리기 위한 기술개발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목소리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에서 창업가가 된 인물, 신정은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정은
22년간 건국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로 근무하다가, 불현듯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스타트업 대표가 된 인물. 치매로 아버지를 잃은 이후, 누구도 자신과 같은 슬픔을 겪게 할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AI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보이노시스’를 창업했다.

경력
· 보이노시스 대표이사
· 건국대학교 이비인후과 정교수
· 건국대학교병원 임상시험센터 센터장
·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임상의
·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
학력
·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KMBA석사
·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학 석·박사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 졸업
 

22년간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로 수만 명의 환자를 돌봤다

어릴 땐 어머니 밑에서 음악을 배웠다. 바이올린 전공을 준비하다 초등학생 즈음에 불현듯 연습이 싫어 도서관으로 도망쳤다. 악기 연습보다 공부가 체질이라는 걸 알았고, 취미로 삼을 정도로 공부에 열중한 덕에 음대가 아닌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의대 본과 수업 중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은 60대 환자의 사례를 듣게 됐고, 20년 만에 딸의 목소리를 듣고 눈물 흘리는 환자의 모습을 보며 이비인후과 전공을 꿈꿨다. 이를 계기로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며 ‘소리를 잃은 이들에게 소리를 돌려주는 것’을 의료 철학으로 삼았다. 단순히 보청기 처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활치료와 지속적인 관심으로 환자의 청력을 되찾아 주고자 노력했다.

 

보이노시스를 창업하는 데 아버지와의 일화가 계기가 되었다고

아버지가 치매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은퇴하신 뒤 점점 말이 어눌해지고 행동에서도 이질감이 느껴졌다. 혹시 몰라 병원에 직접 모시고 가 치매 선별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에서 만점을 받으신 탓에 치매 걱정은 접어두었다. 그런데 얼마 뒤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알고 보니 치매 검사를 예약한 이후 아버지가 치매 검사 내용을 직접 찾아보고 사전에 공부하신 거다. 이를 알았을 땐 이미 아버지의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였다. 치매 진단을 받은 후 4년 넘게 직접 모셨는데, 아버지도 나도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학식이 높은 분일수록 치매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신다. 평생 쌓아온 게 많은 어른일수록 자존심이 높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은 수첩을 발견했다. 수첩에 한 시간 단위로 본인이 뭘 했는지 기록해 놓으셨더라. 스스로 본인의 건강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던 거다.

 

가장 가까이에서 아버지를 살폈던 딸이자 전문의로서 상심이 컸을 것 같다

그렇다. 아버지와 사이가 정말 좋았다. 첫딸이자 외딸이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성격도, 취향도, 생김새도 비슷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잃은 순간이 더욱 뼈아프게 느껴졌다. 돌아가신 순간이 아니라 치매를 앓으신 이후로 그렇다. 치매 환자 가족을 보살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치매를 앓은 다음부터는 그동안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영혼이 없는 아버지를 천천히 잃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치매는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최선책이다.
치매 검사보다도 치매 이상 증상을
먼저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청력 검사다.
누구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이노시스를 창업했다."



보이노시스로 전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완치할 수 있는 병은 많지 않다. 대부분 만성질환으로 평생 관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말인즉슨, 평소에 관리만 잘한다면 건강한 사람 못지않게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잔소리다.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땀 나게 운동하면 성인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나 실천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만성질환 환자들을 분기마다 만나는데, 병원을 1년 뒤에 방문하라고 하면 약이 몇 달 치씩 남은 채로 찾아온다. 사람은 짧은 주기로 계속해서 잔소리를 해야 건강을 신경 쓴다.

그 다음은 교육이다. 다른 사람은 아플지 몰라도 나는 아닐 거라며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환자를 만날 때마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어디가 언제부터 망가지느냐의 차이다”라며 따끔하게 충고한다. 신체 장기가 각각 구분된 것 같지만, 결국 모두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룬다. 어느 한 곳 할 것 없이 몸 전체를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관리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간다. 혼자서 병을 이겨내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과거에는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살며 자식이 부모를 부양했지만, 현대에는 이런 문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가족이 돌봐 주면 가장 좋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에겐 가족을 대신해 건강을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이노시스가 ‘지속적인 잔소리’를 건네는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보이노시스는 자체 개발한 음성 분석 기술로 2023 국제 음향음성 신호처리 학술대회(IEEEICASSP 2023)의 알츠하이머 질환 인공지능 판별 세계대회(The MADRessChallenge)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속적인 잔소리가 목표라니, 흥미롭다

이를 위해 ‘보이스체크’ 앱을 개발했다. 사용자가 매일 짧은 음성을 녹음하면 뇌 건강 지수를 분석해 보여 준다. 분석 결과가 위험군으로 분류되면 사전에 등록된 보호자에게 알림을 보낸다. 매일 가족이 해야 하는 잔소리를 앱으로 대신하는 거라고 보면 쉽다. 단기적으로는 병원 검진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는 생활 속 건강검진 서비스를, 궁극적으로는 직접 녹음할 필요 없이 일상에서 음성을 쓰는 순간마다 자연스럽게 건강을 체크하는 무자각 모니터링 서비스가 목표다.

뇌 검사에 음성을 활용한다는 것이 사뭇 낯설게 느껴지는데 MRI나 CT는 신체의 구조적 변화를 살피는 장비다. 그 때문에 어느 정도 뇌 구조의 변화, 즉 뇌세포에 문제가 생겨 위축되거나 출혈이 생겨야 확인할 수 있다. MRI나 CT 검사 결과에 이상 증세가 보일 정도면 뇌질환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 셈이다.

반면 음성은 신체 기능적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영역이다. 말을 한다는 건 뇌 측면에선 고차원적인 활동이다. 폐에서 공기를 밀어내고, 미세한 발성을 가능하게 하는 100여 개 이상의 여러 근육을 조절하고 단어를 고르고 문법을 생각해야 비로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조율하는 게 전두엽과 측두엽 그리고 미주신경 같은 뇌신경이다. 뇌 기능이 떨어지면 근육 조절 능력부터 미세하게 어긋난다. 사람의 귀로는 똑같이 들릴 수 있지만, 정밀한 분석을 거치면 미세한 떨림, 발화 속도의 불규칙성, 음역대 변화 등의 신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뇌에 큰 이상이 생기기 전부터 음성으로 이상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음성은 그날그날의 컨디션을 보여 주는 것도 장점이다. 충분한 수면을 취했는지, 소화가 잘되는지, 그 외 다른 신체 이상은 없는지 등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매일 몸 건강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보이노시스의 핵심 기술을 설명해 달라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목소리도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 우리는 이를 쉽게 설명해 ‘음성 DNA’라고 부른다. 보이노시스 기술은 개인별 음성 DNA를 기준으로 건강 변화를 짚어내는 방식이다. 말이 느리거나, 톤이 높거나. 개인의 목소리 특성을 AI 기술로 먼저 파악한다. 핵심은 변화를 감지하는 거다. 평소와 달리 말에서 미세한 떨림이 발견되거나 말의 속도에 변화가 생기면, 그것이 질병 가능성을 확인하는 ‘음성 바이오마커’가 된다. 음성 바이오마커는 음성에서 추출한 신호로 신체적·정신적 질환의 징후를 조기 진단하는 생체 지표를 말한다.

여타 AI 헬스케어 기업과의 차별점은 전문의의 의료 기술이 적극 개입한다는 점이다. 몇몇 헬스케어 기업은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데 집중한다. 유튜브 등의 플랫폼을 통해 수집한 잡음 섞인 데이터를 쓰다 보니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노이즈에 취약하다. 보이노시스는 기업 대표인 나부터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만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선별한다. 병원 임상으로 검증된 의료 데이터를 기술에 학습시키고, 단순히 파형 분석을 넘어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80여 가지 음향학적 특징을 분석한다. 소음이 많은 환경에서도 정확도가 높은 이유다.

이런 기술로 치매 선별은 물론이고 음주 측정 엔진과 스트레스 엔진까지 확보했다. 음주 측정은 정확도가 90% 이상이다. 체내에 술이 들어가면 소뇌 기능이 둔화되면서 혀가 꼬이는데, 혈중알코올농도와 목소리 변화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거다. 스트레스나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코르티솔 수치에 따라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목소리 하나로 다양한 분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람마다 고유의
‘음성 DNA’를 갖는다.
음성의 일관성을 파악해
미리 질병의 이상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매일 말하는 것만으로
건강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의사라는 안정적 삶의 기반을 떠나 창업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했다. 두려움은 없었나?

진료실과 수술방에서 하던 일을 회사에서 할 뿐 직업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20년 넘게 환자를 보면서 느낀 바가 있다. 인지장애가 진행되는 환자는 목소리부터 달라진다는 것이다. 목소리 톤과 속도, 뉘앙스가 달라진다. 어릴 때 음악을 배운 덕인지, 이비인후과 의료 지식 덕인지는 모르지만 음감에 예민한 편이라 그 차이를 명확히 알아챌 수 있었다. 덕분에 10여 년 전부터 보청기를 사용하는 환자 중 인지장애 초기 징후가 보이면 신경과 진료를 권해 왔다. 다만, 이런 조치가 의사인 나의 감으로 결정할 뿐 객관적 지표와 자료로 진단할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소리의 차이를 과학적 근거로 증명하고 싶었고, AI 기술이 발달한 지금 시점에선 그것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진료는 의사가 환자를 직접 대면해야 한다.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 수가 정해져 있고, 같은 공간에 있어야만 한다. 의사로서 아무리 열심히 임한다 해도 수술방에서 만날 수 있는 환자 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기술을 개발하면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건강한 사람이 아프기 전에 미리 도움을 줄 수 있다. 치료에서 예방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거다. 그 변화를 직접 이끌어 많은 이를 돕고 싶었다.
 


보이노시스가 나아갈 방향성이 궁금하다

라이프스타일 헬스케어의 중추가 되고자 한다. 현재 대웅제약과 협업해 시니어 레지던스 ‘하남케어허브’에 참여하고 있다. 치매가 오기 전,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개입하는 게 핵심이다. 치매는 발병하고 나면 되돌리기 어렵지만, 그 전 단계에서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요양원처럼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2주에서 3개월 정도 지내면서 인지 훈련과 운동, 식단 관리를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보이노시스 검사로 무증상 단계에서부터 인지장애 가능성을 선별하고, 위험 신호가 잡히면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연결한다. 단순히 진단에서 끝나는 무책임한 기술이 되고 싶지 않다. 집에서는 앱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면 오프라인 센터에서 케어받는, 발견에서 해결까지 이어지는 헬스케어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

 

단순한 진단을 넘어 건강한 삶 전체를 돌보는 영역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그렇다. 단순히 느리게 늙는 걸 넘어서 에이지 리셋(Agereset)영역까지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라고 하지 않나. 나날이 발전하는 의료 기술 덕에 장수할 방법이 정말 많아졌다. 이제는 ‘어떻게 오래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떤 모습으로 오래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사람의 나이는 주민등록상 나이니까 바꿀 수 없겠지만, 생체 나이는 다르다.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면 60대도 40대의 생체 리듬을 가질 수 있다. 가장 치열하게 일하면서 뇌를 혹사시키는 3040세대도 마찬가지다. 보이노시스가 단순히 노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이유다.

 

부모님의 뇌 건강을 우려하는 중년 자녀들에게 건네고 싶은 위로가 있다면

보이노시스를 창업하며 치매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다짐은 개인의 목표이자 아버지와의 약속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옆에서 그 마지막을 지켜보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나와 같은 아픔을 다른 이들도 똑같이 겪게 내버려둘 순 없다. 치매 없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부모님 건강을 걱정하는 중년 자녀들에게 보이노시스가 효도의 도구가 되길 바란다. 그것이 의사이자 보이노시스 대표로서 내 소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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